(치안신문=문화부) 우리 민족은 예부터 태풍 등 자연재해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거나 마을의 풍수지리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마을 공동으로 숲을 조성하거나 보호해왔다.
마을 주변의 '산과 물 그리고 바람의 어울림'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한 것이다. 주변 지형을 호랑이, 소, 용, 봉황, 지네 등의 형상으로 보고 마을숲이 지형의 기운을 북돋거나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마을숲은 우리 전통마을의 경관을 대표하는 요소인 동시에 토착신앙과 풍수, 유교 등 전통문화가 녹아들어 있는 공동 자산이었다.
또한 마을숲은 마을 공동의 쉼터였고, 굿을 하거나 마을 제사를 올리는 장소였으며, 지신밟기와 씨름 같은 전통놀이의 장소이기도 했다. 우리 고유의 생활과 문화와 역사가 온전히 녹아 있는 생태자원인 셈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수 마을숲이 훼손됐으며, 가치 있는 수목들이 고사하고 후계목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산림청은 마을숲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2003년부터 복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산림청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복원된 전통마을숲 중에서 77곳을 담은 〈전통마을숲 복원 사례집〉을 최근 펴냈다. 숲의 유래, 복원 현황, 관리·이용 현황 등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어 여행을 계획할 때 활용하면 좋다. 책자는 산림청 누리집을 통해 전자책(e-book)으로도 볼 수 있다. 산림청은 올해부터 2020년까지 5년간 367억 원(국비·지방비)을 투입해 전국 534개소의 마을숲을 더 복원할 계획이다.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의 재물과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성한 경기 이천시 연당숲(사진제공=산림청) |
관찰사(지금의 도지사)를 지낸 임내신이 1520년 이곳에 터를 잡고 당시 최고 풍수가를 초대했다. 풍수가는 송말리와 원적산의 지세를 살피더니 "재물과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형상이다. 재물과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으려면 저기 보이는 마을 입구에 연못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임내신은 큰돈을 들여 연당과 연당숲을 조성했다. 이처럼 마을에 나쁜 기운이 통하지 못하게 숲이나 탑, 건물 등을 조성하는 것을 '수구막이'라고 한다. 연당과 연당숲은 풍수지리적인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마을 앞 숲이 바람을 약하게 하고, 마을 안쪽에 있는 논의 수분 증발을 막아준다. 연못은 지하수 수위를 높여 갈수기에도 물이 부족하지 않게 한다.
2005년부터 숲을 복원해 정비하고 자연학습장 조성 사업을 진행했다.
강원 강릉시 구정리 마을숲은 소나무와 마을 서낭당이 잘 보전돼 있어 문화적 가치가 높다(사진제공=산림청) |
조성 시기는 소나무 수령으로 보아 100여 년 전으로 추정된다.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는지 인위적으로 조성되었는지 불분명하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소나무와 마을 서낭당이 잘 보전돼 있다.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숲이었지만 수차례 수해와 그에 따른 복구 과정에서 숲이 최고 1m 높이까지 복토된 채 방치돼 나무들의 생육 상태가 악화되고 일부는 고사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2006년 4월부터 숲을 복원하고 산책로를 정비해 지역주민들에게 휴식 공간과 문화 체험 공간이 되고 있다.
1000기가 넘는 묘와 재실이 있는 등 장묘문화가 살아 숨 쉬는 대전 동구 이사동 한옥마을숲(사진제공=산림청) |
은진 송씨가 500년 전 정착해 집성촌을 이룬 곳으로, 1000기가 넘는 묘와 재실이 있는 등 장묘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개발의 손길에서 비켜나 숲은 오래전 모습 그대로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넓고 나지막한 구릉에 수령 100년 이상 된 소나무 1400여 그루가 고루 분포돼 있어 전통 소나무 숲의 진귀한 임상을 간직하고 있다.
문화적, 자연적 가치가 높고 인근 학교 학생과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쾌적한 이용과 지속적인 보전을 위해 2012년 숲 정비 사업을 진행했다.
마을 방풍림으로 조성한 충북 괴산군 후평숲은 소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들로 인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사진제공=산림청) |
풍수상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하천인 박대천으로 지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한기를 막기 위해 약 300년 전 인위적으로 조성한 방풍림이라는 설이 전해온다.
소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등이 저마다 경쟁하듯 높이 솟아 있어 인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빼어난 주변 경관과 더불어 인근에 국립공원 화양동 계곡, 공림사 등 연계되는 관광지들이 많아 야영장으로 인기가 많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배를 건조하기 위해 남벌(濫伐)하는 바람에 숲이 파괴될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지금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피서객이 몰려 또다시 숲이 급속도로 훼손되고, 외국에서 들여온 아까시나무 때문에 기존 나무들의 생육 훼손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마을 주민들은 복원에 적극 나섰다. 정부에서도 2003년, 2007년 2회에 걸쳐 숲 복원과 정비를 지원했다.
충남 홍성군 좌우촌마을숲은 우리나라 고유의 육송림이 장관을 이룬다(사진제공=산림청)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06호로 지정되어 있는 결성동헌과 주변의 석당산 일원에 분포되어 있는 소나무 숲으로 일제강점기에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고유의 육송림으로 노경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주민들의 휴식과 여가 활용 공간으로 사용되고, 학생들에게는 역사문화와 자연학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3년 고사목 제거 및 생육 환경 개선, 전통시설 복원 사업을 진행했다. 좌우촌마을 청년회에서 2013년부터 자체적으로 정비 사업을 벌이고 주변에 야생화(산철쭉, 말발도리, 구절초, 상사화)를 심고 있다.
전남 화순군 둔동마을숲은 6·25전쟁 때 없어질 뻔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지극정성으로 살려냈다(사진제공=산림청) |
1500년경 마을이 형성되면서 인공으로 조성한 숲이다. 이 숲이 마을 사람들에게 각별한 존재였음은 이 마을에 내려오는 엄격한 규약에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썩은 나무라도 어느 누구도 나뭇가지 하나 마음대로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한때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국군이 모후산에서 내려오는 빨치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마을의 모든 나무를 없애려 한 것. 당시 대부분의 마을숲이 이런 이유로 사라졌지만, 이곳은 마을 사람들의 지극정성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400년 이상 된 느티나무, 팽나무 등이 우거져 주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2003년 복원·정비 사업을 벌이며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마을 수구막이 숲으로 조성된 포항 덕동숲(사진제공=산림청) |
나쁜 기운이 통하지 못하게 마을 수구막이 숲으로 조성된 곳으로 자연계류(연어대, 합류대, 와룡담) 등이 잘 어우러진 역사문화 경승지다. 약 360년 전 여강 이씨가 이곳에 이사 오면서 조성했다고 하며, 소나무 크기가 판자가 될 정도가 되면 벌목해 그 수입으로 숲을 운영해왔다고 한다.
이 숲에 귀속되어 있는 논에서 나온 수입으로 회갑이 지난 마을 노인에게 설과 추석에 쇠고기 한 근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공한 미풍이 있었다고 한다.
숲 내부에 용계정 정자가 있으며, 인접한 곳에 생태연못이 조성돼 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 수목 식재(후계림 조성) 등으로 숲을 복원·정비했다. 산림청 선정 '2006년 가장 아름다운 숲'에 이름을 올렸다.